우리 집에도 레고가 있어.

아들은 레고 더미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발굴해 온다. 나 혼자 뭔가를 만들어서 몰래 두고 가는 거다. 그럴 때마다 반갑다고 웃지만 사실 그냥 레고 더미를 볼 때마다 나는 웃는다. ‘우리 집에도 레고 있다!’ 나는 레고를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레고를 사지 않는 것과 사지 못하는 것. 나의 유년은 그 사이에 있다. 블록놀이에 관심이 없어서 집에 레고가 없었는지, 집에 레고 하나 없어서 취향 선택이 불가능했는지 조금 헷갈린다. 하지만 친척집에 있던 레고 더미가 그 청바지 재질로 만든 보자기 안에 가득한 레고 더미를, 그걸 볼 때마다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걸 보면 나는 어쩌면 레고 박사가 될 기회를 박탈당했을지도 모른다. 보잘것없는 것 또한 저 녀석의 가난 때문에. 내 기준으로 대체적으로 결핍 없이 자란 것처럼 보이는 남편은 이런 내 사고에 해결책이라며 ‘이제 잊고 또 채우고’ 이런 말을 한다. 결핍은 그러니까 유년의 결핍은 말이다. 팔이나 다리가 없거나, 주춤하고 있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반듯한 두 다리를 자랑스럽게 흔들고 있지만 나만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여보, 잘린 팔이나 다리가 다시 자라는 거 봤어?” 우리 집에 지금 레고가 산더미처럼 쌓여도 유년의 레고 하나 없던 나는 여전히 레고 없는 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혐오한다. 가짜 팔을 끼고 조잡하게 흔드는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마다. 남은 것은 인정이다. 그리고 자랑이다. 결핍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랑을 해야 한다. 결핍의 역사를 자랑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나도 그래. 저를 보세요. 저 팔 없죠? 이게 왜 그러냐면요. (타임머신 Q!) 하지만 이런 자랑은 결국 논리에 맞지 않았다. 솜씨가 있는 사람은 팔로 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팔 자체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도 이제는 “제가 팔이 하나도 없는데 이 없는 팔로 뭘 이뤘는지 보세요.” 이렇게 자랑하는 방법을 바꿨다. 그럴듯한 문장이지만, 뭐든지 쓰고 있으니까. 내 글을 보니 결핍 없이 이런 글을 쓸 수는 없네. 인정한다. 누가 이걸 자랑이라고 생각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에게 박수를 받지 못해도 놓아줬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 결핍을 자랑하고 있다. 인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레고가 없어서 정말 좋았어요. 그 덕분에……」 이처럼, 아니, 이 경지에 이르러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떠오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아들은 레고 더미에서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발굴해 온다. 나 혼자 뭔가를 만들어서 몰래 두고 가는 거다. 그럴 때마다 반갑다고 웃지만 사실 그냥 레고 더미를 볼 때마다 나는 웃는다. ‘우리 집에도 레고 있다!’ 나는 레고를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레고를 사지 않는 것과 사지 못하는 것. 나의 유년은 그 사이에 있다. 블록놀이에 관심이 없어서 집에 레고가 없었는지, 집에 레고 하나 없어서 취향 선택이 불가능했는지 조금 헷갈린다. 하지만 친척집에 있던 레고 더미가 그 청바지 재질로 만든 보자기 안에 가득한 레고 더미를, 그걸 볼 때마다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걸 보면 나는 어쩌면 레고 박사가 될 기회를 박탈당했을지도 모른다. 보잘것없는 것 또한 저 녀석의 가난 때문에. 내 기준으로 대체적으로 결핍 없이 자란 것처럼 보이는 남편은 이런 내 사고에 해결책이라며 ‘이제 잊고 또 채우고’ 이런 말을 한다. 결핍은 그러니까 유년의 결핍은 말이다. 팔이나 다리가 없거나, 주춤하고 있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반듯한 두 다리를 자랑스럽게 흔들고 있지만 나만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여보, 잘린 팔이나 다리가 다시 자라는 거 봤어?” 우리 집에 지금 레고가 산더미처럼 쌓여도 유년의 레고 하나 없던 나는 여전히 레고 없는 상태일 뿐이다. 그리고 혐오한다. 가짜 팔을 끼고 조잡하게 흔드는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마다. 남은 것은 인정이다. 그리고 자랑이다. 결핍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랑을 해야 한다. 결핍의 역사를 자랑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나도 그래. 저를 보세요. 저 팔 없죠? 이게 왜 그러냐면요. (타임머신 Q!) 하지만 이런 자랑은 결국 논리에 맞지 않았다. 솜씨가 있는 사람은 팔로 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팔 자체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도 이제는 “제가 팔이 하나도 없는데 이 없는 팔로 뭘 이뤘는지 보세요.” 이렇게 자랑하는 방법을 바꿨다. 그럴듯한 문장이지만, 뭐든지 쓰고 있으니까. 내 글을 보니 결핍 없이 이런 글을 쓸 수는 없네. 인정한다. 누가 이걸 자랑이라고 생각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에게 박수를 받지 못해도 놓아줬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 결핍을 자랑하고 있다. 인정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레고가 없어서 정말 좋았어요. 그 덕분에……」 이처럼, 아니, 이 경지에 이르러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떠오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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